종현이 통증이 너무 심하면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기범이 치고 올라올 때마다 내장도 쑤셔올려지는 듯한 역겨운 느낌은 여전했지만, 허리 아래는 신경세포가 있어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정상적인 육체가 아니라 끈적하게 녹아내린 푸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눈물 탓에 시야가 흐려져서 기범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아플 정도로 제 손목을 꽉 죄인 넥타이로부터 팔이 자유로워진다면, 눈물을 지워내고 기범의 얼굴을 바로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리고 울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기범을 끌어안아야지. 아파보이는 너를, 벅찬 품에 꽉 들어차게.
기범이 피치를 올린다. 더 깊숙하게, 더 이상 파고들 수도 없을 것처럼 좁은 구멍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하, 하윽, 기범의 빠른 피스톤질에 익숙해지지 못한 종현의 둔한 몸뚱이가 노래방의 퀘퀘한 소파에 쓸려 올라갔다. 기범과 접합된 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도 허리를 쓰는 까슬까슬한 소파의 느낌이 종현에겐 더 와닿았다. 같은 남자라서일까, 종현은 직감적으로 이 행위가 끝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공중에서 하릴 없이 덜렁거리던 두 다리를 스스로 움직였다. 허리 아래는 신경이 끊어진 것처럼 무감각해서 사실 제 뜻대로 다리가 움직여졌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종현은 될 수 있는 한 다리를 기범의 허리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고리처럼 묶인 두 팔을, 피가 통하지 않아 얼얼하기까지 한 두 팔을 겨우 움직여 기범의 목덜미에 걸쳤다. 문득 기범이 멈칫,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찰나일 뿐이었다. 종현이 기범을 끌어안은 순간 기범은 밭은 숨을 내뱉으며 종현 안에 자신의 욕망을 쏟아내었다.
“흐, 흐읏-!”
그 뜨겁고 질척한 액체가 제 아랫도리를 채우는 순간 종현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하얀 스파크가 이는 종현의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건 기범과 자신의 어린시절이었다. 어렸던 종현과 더 어렸던 기범. 기범은 작고 하얗고 사랑스러워서, 종현은 그런 그를 마냥 지켜주고 싶었다. 한 침대에서 같이 잠들던 시절에, 스르륵 두 눈을 감는 기범에게 항상 속삭이곤 했었다.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우린 언제나 함께일 거라고.
“……종현아….”
파정을 하는 기범이 한숨과 같은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렀다. 주마등의 끝에서 현실로 끌어올려지는 느낌이었다. 기범의 입술에서 내뱉어지는 자신의 이름은 퍽 서글픈 음색을 띠고 있었다.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종현은 울음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아프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종현은 팔에 힘을 주어 기범의 목을 끌어당겼다. 기범은 아무 반항 없이 서서히 종현이 하는 대로 따라내려왔다. 기범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종현은 기범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격정의 행위가 끝나고 정적만이 자리한 공간에선, 기범의 거친 숨소리와 종현의 울음 섞인 밭은 숨소리가 섞인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종현은 기범의 이름을 따스하게 불러주고 싶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다. 먼저 시작한 것은 나였다고. 먼저 시작한 주제에, 그 마음을 외면해서. 네 곪아들어가는 속을 모른 척해서 미안하다고. 먼저 시작한 것도, 널 이렇게 아프게 만든 것도 나이니까 너는 전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까, 더 이상 울지 말라고. 기범이 기대어 누운 심장 부근의 와이셔츠는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행위의 여운이 가시도록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범의 숨소리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가 울음을 삼키고 있기 때문이란 걸, 종현이 모를 리 없었다. 종현은 그제서 기범이 안쓰럽기 그지 없던 자신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우습지만, 그제서야. 이미 할퀴어진 마음과 잔뜩 얼킨 실타래만이 남았지만, 진심은 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끝내 종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음 소리가 목소리를 가로 막는 것도 그랬지만, 말이 너무 무거웠다. 진심을 담은 말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마음의 바다에서 끌어올릴 재간이 없었다.
종현의 품에서 벗어난 기범은 울었다기엔 너무 멀쩡한 얼굴이었다. 입술이 굳게 다물린 표정 없는 그 얼굴은 마치 하얗고 차가운 조각 같았다. 바지를 추스린 기범은 종현의 손목을 결박하고 있던 넥타이만 끌러내려 주더니,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쌩하니 노래방을 떠나가 버렸다.
“……기, 범아.”
혼자 남은 룸 안에서 종현의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미…안, 미안, 해… 흡, 흐흑….”
그렇지만 이미 그 목소리를 들어줄 주인은 자리에 없는데. 너무 늦었다. 너무, 늦게 터져나온 목소리였다. 왜 자신은 이리도 아둔할까. 왜 나는 이렇게 용기가 없을까. 왜 이렇게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할까. 외면한 것은 비단 자신을 향한 기범의 마음 뿐만이 아니었다. 기범을 사랑했던 스스로의 마음조차 외면하고, 너무 오래도록 외면해서 둔감해질 대로 둔감해진 채. 그렇게 한 겹 두 겹 쌓여진 거짓이 진실인 것 마냥. 종현은 스스로를 탓하며 싸하게 식은 방 안에서 오래도록 울었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벽 너머에서, '웃어요 웃어봐요' 그런 가사가 들어있는 오래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종현은 더, 더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그날 밤, 종현은 심하게 앓았다. 심하게 배탈을 앓았고 먹는 족족 토했다. 새벽 내내 잠을 들지 못할 정도로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온 몸이 쑤시듯이 아팠다. 종현의 어머니는 연차 휴가를 당겨 종현을 간병해야할 정도였다. 블라인드 사이로 쏟아지는 옅은 햇볕으로 벌써 아침이 밝았다는 걸 알았다. 자신 때문에 밤을 샌 어머니에게 미안한 것도 한 거지만, 종현은 자꾸 기범이 생각만 났다. 맑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그게 머리꼭대기까지 차오른 열 때문에 생리적으로 흐르는 건지, 아니면 기범이 생각에 저도 모르게 흐르는 건지 종현은 알 수 없었다.
꼬박 사흘이 지나고나서야 종현은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미열이 남아있었고 아직도 죽이 아니면 음식을 잘 넘기지 못했지만, 종현은 병원에 가자는 엄마의 제안을 극구 거부했다. 설마 그런 검사까지 할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병원에 갔다가 강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질까봐.
야채죽으로 늦은 아침 식사를 하는데 막 출근 하려는 차림새의 아버지가 종현의 방에 들어왔다. 보통의 아버지들이 그렇듯 종현의 아버지는 무뚝뚝했고 고등학생이 되고선 제대로 눈조차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앓는 종현이 어지간히도 안쓰러웠는지 아빠, 하고 갈라진 음성으로 말하는 종현의 어깨를 말 없이 다독여주었다.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해졌다. 아들이 아파서 마음 고생, 몸 고생 한 엄마, 내색은 안 했어도 직장에서 아들이 걱정되었을 아빠.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현이 가장 미안한 사람.
핸드폰을 켜니까 친구들의 안부 메세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부재 중 전화도 몇 개. 통화 목록에서 부재 중 전화의 출처를 확인하다가, 낯선 번호가 보였다. 공중 전화번호 즈음으로 보였다. ……너는 어째서.
「들어와 들어와서 얘기 좀 해」
단축번호 1번에 저장되어있는 그 번호. 느릿느릿, 문자를 다 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잠은 어디서 자고 있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기범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도 사흘이 지났다.
며칠 동안이나 온 몸이 타버릴 것처럼 뜨거웠던 이유, 그것은 지혜열. 종현은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던 간에 그것은 죄가 될 것이라고. 종현이 자신을 사랑하는 기범을 외면한다면 그건 지금까지 기범에게 범해왔던 것과 같은 죄를 되풀이하는 길이겠고, 설령 기범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건 부모님과 세상에게 죄를 짓는 길일 테니까. 하지만 기범아 나는. 죄라면, 죄를 지어야한다면 ……더 이상 너를 아프게 하고 싶진 않아. 기범은 충분히 괴로웠기에, 종현은 그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신이 있을까? 신이 있다면,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자신을 이렇게 아프게 만든 거라고, 종현은 생각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차피 네가 무엇을 하던 그건 죄가 될 거야. 신이 그렇게 말했다.
종현은 블라인드를 조금 걷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21층은 참 좋다. 종현의 아파텔 위치가 탁 트인데 있기도 있는 거였지만, 하여튼 21층은 높은만큼 하늘에도 가까웠다. 벌써 해는 중천에 떴지만 너무 눈부시진 않았다. 청명하고 푸른 하늘이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푸른 하늘만을 바라보는데, 침대 맡에 고이 놓여있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종현은 이내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고,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휴대전화를 들어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말을 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전화가 제대로 연결된 건 맞나, 싶을 정도로 침묵만이 감돌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입술을 떼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고 있을 기범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범아.”
이제 먼저 다가서는 것은 내가 되어야겠다고, 종현은 다짐했다. 상냥한 형인 체 하는, 기범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마음조차 외면했던 가면을 벗자고.
―받지, 않을 줄 알았어.
까슬해진 목소리. 지난 밤마다 잠을 설쳤을 너를 생각하면 다시 눈물이 고인다.
―김종현, 나는, 난…….
“기범아, 내가 먼저 말할게.”
―…….
“내가 먼저였어.”
―…뭐가.
“널 사랑한 것도, 너가 날 사랑하길 바란 것도 내가 먼저였어. 날 사랑한 널 외면한 것도 나였어. 잘못은 다 나였어, 기범아.”
그러니까 기범이 너는, 어떠한 죄의식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종현은 용기를 내어야했다. 이제껏 갖지는 못했던 그런 용기. 그리고 말해야 했다. 그 뜨겁고 눈물과 상처 투성이었던, 좁은 방 안에서의 행위 뒤에 했어야 했던 말.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기범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말.
“미안해 기범아.”
다시 본 하늘이 너무 푸르러서. 죄악을 짓기엔 너무도 푸르러서. 종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신이 허락한 죄악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기범아. 괜찮아. 너를 향한 위로, 나를 향한 위안. 괜찮을 거야, 김종현.
“나는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어서 내게로 돌아와. 너무 아팠던 너를 내가 끌어안을 수 있게. 이 품 안에, 너를 벅찰 정도로 끌어안을 수 있게.
- 2010/10/0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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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9/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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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푸르다. 기범은 입술에 문 담배를 두 뺨이 홀쭉할 정도로 빨아들이며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부신 가을 햇살과 물에 갠 하늘색 물감처럼 청명하고 높은 하늘. 죄악을 져버리기엔 너무도 푸른 하늘이어서 기범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씨발. 김기범,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상념은 깊숙한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낮고 굵직한 목소리에 의해 중단된다. 기범은 아직 채 반이 타들어가지 않은 담배를 옥상 난간에 대충 비벼끄곤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야 내 말 씹냐? 재차 들려온 저음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났고, 기범은 그제야 제 사선의 앞머리칼을 한 손으로 쓸며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훤칠한 키에 목덜미까지 오는 곱슬기 있는 머리카락을 검은 고무줄을 사용해 뒤로 묶은 최민호가 서있었다. 하복과 춘추복 혼용 기간은 이미 지난주에 끝난 줄로 아는데 학주에게 끌려가지 않는 한 교칙을 도무지 들어먹을 줄 모르는 최민호는 여전히 반팔 차림이었다. 슬슬 찬 바람이 부는데, 저 새끼는 춥지도 않나.
“존나 찾았잖아.”
탁, 그가 기범의 앞에 서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타닥 불을 붙인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기범은 물끄러미 바라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존나 찾았다고? 오늘 딱히 약속을 잡은 적이 없는 줄로 아는데. 오늘이 뭐 특별한 날이라도 되나? 모의고사가 끝나서 야간 자습이 없긴 하지만, 야간 자습이 있는 날에도 저 내키는 대로 집에 가곤 하는 기범과 민호다. 모의고사 가채점 때문에 늦어지는 종례 시간은 두 사람에게 한없이 지루하고 쓸데 없는 시간에 불과하다.
“이태민이 여고 애들 데리고 노래방 간댔잖아.”
“아…….”
“아? 이 새끼야, 니가 섹스하고 싶대서 나온 얘기잖아. 장난하냐?”
기범은 민호의 말에 그제서야 흘리듯이 넘겨들었던 오늘의 약속에 대해 떠올렸다. 전부 지난 일요일 밤에 있던 일로부터 비롯된 약속이었다.
그 일요일, 기범은 태민의 연락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하고 클럽에 갈 생각인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딱히 주말을 알차게 보낼 어떤 계획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기범은 태민의 제안에 따라 클럽에 갔다. 그리고 그 날 클럽에서 대학생 무리와 시비가 붙어서 거의 패싸움까지 갈 뻔 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범은 그 날따라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클럽 물도 영 별로인 것 같고 DJ가 하는 선곡마다 구리기 그지 없어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기범은 먼저 시비를 걸어온 무리들에 대해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입을 대고 마시던 맥주병을 그대로 휘둘러 머리를 내려쳤고, 다른 한 놈의 머리채를 쥐어잡아 테이블의 재떨이에 정확히 박아넣었다. 클럽의 분위기는 난장판이 되었지만 기범은 괴념치 않았다. 주말에 한껏 달아오른 클럽은 각종 마약이 돌아다니고 온갖 난잡한 행위가 벌어지는, 일종의 무법지대였다. 경찰을 부를 수 있을 리도 없고 클럽 매니저가 할 수 있는 조치라곤 난리를 막기 위해 검은 정장의 떡대 몇 명 정도를 부르는 일 정도뿐이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건 대학생들을 적당히 피떡으로 만들어 놓은 기범과 그 무리들이 클럽에서 각자 알아서 달아났고, 클럽에서 좀 멀리 떨어진 바에서 다시 만났다. 바에 들어오자마자 차가운 맥주를 거의 반 병 이상 비워버린 기범을 보며 민호가 요즘 욕불이라도 쌓인 거냐며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둥그런 병의 입구만을 멍하니 쳐다보던 기범은 비식 웃으며 그런 것 같은데, 하고 낮게 속삭였더랬다.
‘섹스하고 싶어.’ 기범의 솔직한 화법에 한 살 아래의 태민이 낄낄대며 기범이 마시다 만 맥주를 홀짝이며 물었었다. 여자라도 소개시켜 드려요? 열이 뻗친 몸에 알코올을 들이부어서 그런가, 자신이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기범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여자는 귀찮아,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은데. 그냥 하룻밤 보내고 마는 거죠, 여상 애들 괜찮던데, 어때요? 태민이 끝도 없이 중얼거렸던 것 같다. 아마 귀찮은 마음에 그럼 그러든지, 하고 대충 대답했을 것이다.
어찌어찌, 기범을 위한 것이지만 정작 기범은 제외된 채로 이야기가 진척되어서 오늘의 만남이 주선되었던 것이고.
“하아, 노래방은 뭔 놈의 노래방.”
분홍색 필통과 노트 한 권 외에 든 것이 없는 한 없이 가벼운 가방을 한 쪽 어깨에만 걸치고, 기범이 미적거리며 교실에서 걸어나왔다. 민호가 그런 기범을 비웃듯이 말한다.
“그럼 모텔 갈 것도 없이 거기서 일 치르던지.”
“섹스는 하고 싶어. 근데……”
기범은 민호의 한 걸음 뒤에서 느릿하게 걷다가, 음악실 앞에 서있는 한 남학생을 보곤 하려던 말도 말고 우뚝 멈추어섰다. 그런 기범을 눈채친 민호가 반쯤 몸을 틀며 왜 그래? 하고 되물었지만 기범의 시선은 집요하게 그 남학생만을 쫓을 뿐이었다. 살짝 갈색빛을 띠는 검은 머리카락에, 아몬드처럼 둥그렇고 커다란 눈망울과 매끄러운 콧대, 앙 다물린 입술. 교칙에 따라 깔끔하게 입은 춘추복에 비해 엉성하게 목 언저리에 묶여진 자주색 넥타이. 민호는 그제서야 그가 기범의 친 형인 종현이라는 걸 알아챘다. 종현은 음악실 문 너머 안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종현을 바라보던 민호가 기범을 한 번 흘끗 훑어보곤, 낮게 중얼거렸다.
“니 형은 진짜 너랑 안 닮았다.”
외모도 외모지만. 민호는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으나 속으로 존나.. 찌질이 같잖아, 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너무 과하지 않을 만큼 자신을 치장하고, 여느 또래들에게 결코 얕보이지 않을 위력을 과시하는 기범과 달리 종현은 언제나 반듯했다. 불량하지 않더라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명찰이나 넥타이따위를 깜박하는 데 비해 종현은 미련스러울 정도로 그런 사소한 차림새를 신경썼고,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듯 조용조용히 말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기범도 물론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귀에 잔뜩 박힌 피어싱을 고수하는 것만 빼면 학교에서의 생활을 대개 조용히 보내는 편이었지만, 그건 선생들과 괜한 마찰을 빚는 게 단순히 귀찮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종현은 정말로 소극적이었고 겁이 많았다. 아무리 학교 안팍에서 난동을 부리고 다닌데도 제 동생의 친구인데 민호가 말을 걸 때마다 종현은 동네 양아치를 만난 안쓰러운 중딩처럼 움찔거릴 정도였으니까. 전교에 기범과 종현이 형제라는 걸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달랐다. 예전에 뭐 배 다른 형제는 아니냐는 식으로 민호가 물어본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 때 기범은 그 질문이 정말 우습다는 듯이 크게 웃어제꼈다. 그리고 여전히 웃음이 묻어난 목소리로, 아…, 뭐라고 말했더라. 민호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꽤 옛날의 일인데다가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기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쓸데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민호가, 다시 기범을 바라보았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노래방에, 누구 온댔어?”
기범의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했지만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태민이랑, 하원이랑 도정이…랬나. 그리고 여고 애 4명.”
“흐음.”
기범이 그래? 하고 작게 되묻더니 민호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종현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는다. 기범은 종현의 어깨를 붙잡기 전에 종현과 이야기하고 있던 상대가 누구인지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쌍커풀 없이 길게 찢어진 눈매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사람 좋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 키는 저와 비슷했지만 약간 체격이 더 있는 듯한 남학생이었다. 복도에서 종현과 함께 있는 걸 종종 본 적이 있으므로, 기범은 그가 종현과 동학년의, 즉 제 한 학년 선배라는 것쯤은 쉬히 알 수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종현이 저 녀석의 이름을 복도에서 부르는 것을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었다.
“지, 진기야. 미안한데 나중에 마저 얘기해.”
아, 그래. 진기. 이진기였다. 무슨 사고로 1년간 학교를 쉬다가 올해 3학년으로 복학했다는 이야기를, 종현에게서 스치듯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단 둘이서 음악실에 남아 뭔 얘길 그리 하고 있던 거지? 왠지 모르게 거북스러운 마음이 든 기범은 진기를 한 번 세게 노려보고는 무작정 종현의 손을 잡아 끌었다.
“기, 기범아. 무슨 일이야?”
“나랑 어디 좀 가.”
종현이 기범의 빠른 보폭을 가까스로 따라잡으며 물었지만, 기범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일방적이고도 쌀쌀맞은 대답 뿐이었다. 종현은 자신이 기범에게 무언가 잘못한 것이라도 있나,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일은 없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을 뿐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그제야 비적비적 방에서 나오는 기범이 보였고, 종현은 평소처럼 일어났냐는 아침 인사를 간단히 건내곤 함께 교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제 방으로 들어섰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자 어느새 씻고 교복을 입은 건지, 머리만 마르지 않은 것 빼곤 학교에 갈 준비가 완료된(물론 넥타이나 명찰 등이 준비되어있지 않았으나 그건 항상 있는 일이었다) 기범이 식빵을 입 안에 구겨 넣고 있는 것이 보여서, 목이 메일 것 같아 우유를 따라주었고…. 그리고 기범이 자신의 구겨진 카라깃을 손수 펴주었고, 넥타이를 제대로 매지 못해 낑낑대는 자신 대신 넥타이를 매주었다. 아내가 남편의 넥타이를 매주는 것처럼은 아니었지만, 종현을 뒤에서 껴안는 형태로는 기범은 제법 능숙하게 넥타이를 맬 줄 알았다. 아, 엄마가 또 넥타이를 못 매냐며 면박을 주긴 했는데… 근데 그건 기범이가 기분 나빠할 일이라기보단 내가 기분 나빠야하는 건데. 이 나이 되도록 넥타이를 못 매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어쨌든 면박을 받은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깐.
“야 씨발!! 김기범, 너 혼자 그렇게 가버리는 게 어딨어!”
교문에 거의 다달았는데 등 뒤로 우악스러운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이름을 불린 기범보다 종현이 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자 민호가 잔뜩 인상을 쓰고 기범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기범의 친구이지만 항상 찡그린 얼굴이나 걸걸한 말투가 항상 좋지 않은 인상을 안겨줘서, 종현은 되도록 그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뭐야, 얘도 같이 가는 건가? 종현은 싫은 마음에 따라가기 싫다는 듯 우뚝 멈춰서서 기범의 팔을 잡아 당겼다.
“뭐야.”
“…뭐, 긴. 어디 가는 건데.”
어디로 가든 최민호 쟤랑은 가기 싫어,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종현은 쭈볏거리며 행선지를 물었다. 기범이 힐끗 민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노래방.”
기범의 말에 민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기범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투였다. 종현이 뭐? 하고 당황한 얼굴로 되묻자 기범이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형 노래 잘하면서 노래방 잘 안 가잖아.”
“야, 가도 내 친구랑 가지 니 친구랑 내가 왜 가.”
“그냥 가. 노래 잘 부르는 애가 없어서 그래.”
종현은 제 손목을 꽉 쥐고 놓아줄 생각을 안 하는 기범을 노려보다가, 결국 체념한 듯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범은 고집이 셌고 하고자 하는 건 꼭 하고야 마는 아이였다. 그에 비하면 종현은 매사에 쉽게 수그러드는 편이었다. 연년생이다보니 함께 다닐 적이 많은 둘이라, 종현은 기범의 기에 항상 눌려지냈다. 뭐 그런 것만 빼면 그래도 사이 좋은 형제였는데, 중학교 때부터 서서히 두 사람의 노는 물이 달라지면서 멀어졌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부턴 학교에서 마주쳐도 인사조차 안 하니까.
그런데 얜 왜 오늘따라 유달리 친한 척이지. 역시 아침에 뭘 잘못 먹은 걸까? 종현이 생각하는 사이 벌써 노래방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태민으로부터 3번 룸이란 연락을 받고 룸을 찾아 들어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룸 안으로 들어서니 1학년인 태민이 가장 먼저 기범과 민호를 반겼다. 종현은 3학년이었지만 태민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유명했다. 재벌 3세, 1학년 일진, 뭐 태민을 수식하는 말들은 다양했는데 올 늦봄에 있었던 축제에서 현란한 댄스를 보여줘서 3학년에선 댄스머신으로 불리고 있었다. 얘가 기범이랑도 친했구나, 좀 신기해서 태민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슬쩍 테이블에 눈이 갔다. 이미 테이블은 맥주와 안주 구색으로 오징어랑 알초콜릿, 과자가 담긴 쟁반이 세팅되어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교복 입고 당당히 음주하는 꼴이 좋지만은 않아서 종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교복 벗고 음주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여기 학생한테 술 팔아?”
종현의 물음에 기범은 어깨만 으쓱였고 대답을 대신한 건 민호였다.
“알바 누나있을 땐 괜찮아요. 그 누나 기범이한테 뻑 갔거든.”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
기범이 민호에게 날카롭게 말하더니 소파에 푹 기대어 책만 뒤적거린다. 종현은 영 어색한지 소파 가장 끄트머리에 앉아 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야, 여고 애들은 왜 없어?”
“좀 늦는다던데. 근데 누구에요? 첨 보는데.”
민호의 물음에 대충 대답한 태민이 종현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기범은 태민을 보지도 않고 내 형, 하고 짧게 대답했다.
“아, 형 있다 그랬죠. 진짜 안 닮았네.”
하원과 도정도 기범에게 형이 있는 줄은 몰랐다면서 쑥덕쑥덕 이야기를 하다가 먼저 노래부르고 있자는 민호의 제안에 노라조를 스타트로 끊었다. 아 카레 졸라 웃겨. 얘넨 뮤비도 웃기던데. 모두들 왁자지껄 마이크에 대고 떠드는 와중에 태민만 물끄러미 종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쑥 일어서더니 종현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노라조의 흥겨운 노래에 고개만 까딱이고 있던 종현이 깜짝 놀라 태민을 올려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이태민이라구 해요.”
“아, 나는 김종현….”
기범은 노래방 책을 뒤적거리다 말고 종현과 태민 쪽을 쳐다보았다. 태민은 아예 종현의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 말을 걸고 있었다. 쟤가 원래 저렇게 사교성이 좋았던가? 기범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민호가 2절은 너가 부르라며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종현과 태민을 뒤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 슈퍼맨도 예약해.
“기범 형한테 형제 하나 있단 얘긴 들었는데 보는 건 첨이네요.”
“아, 좀. 3학년이라 바뻐.”
“오늘은 시간 내셨네요?”
“으응, 야자 없었잖아….”
라기보단 무작정 끌려왔지만. 기범은 야자가 있었어도 종현을 노래방으로 데려올, 그런 포스였지만.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서 대충 얼버무렸다. 종현은 태민이 뭐라고 말할 때마다 조금씩 움찔거렸다. 입학하자마자 2학년 선배 중 두 명이나 입원시켰다고 내내 소문이 돌았다. 그 후로 계속 번지는 소문도 다 무시무시한 것들이었고. 귀여워 보이는 얼굴에 마른 몸인데, 워낙 무성한 소문들 때문에 종현은 태민이 조금 무서웠다.
얘는 왜 불편하게 자꾸 나한테 말을 걸지, 운동화 코끝만 바라보던 시선을 슬쩍 들어 태민을 바라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순간 놀라서 딸꾹질을 하자, 태민이 동그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어느 순간 터진 듯 손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쿡쿡 소리죽여 웃는다. 아… 좇 됐다, 씨발. 종현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데 태민이 그런 종현의 등을 슬슬 쓸으며 웃음이 잦아진 목소리로 괜찮아요? 하고 묻는다. 종현이 고개만 끄덕이며 다시 태민을 바라보았다. 눈에 반쯤은 접힌 채로 달달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생각보다 무서운 애는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도 청아하고. 조금 경계가 느슨해진 종현이 아까부터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근데… 누가 더 오기로 했어?”
“아, 옆에 여상 있잖아요, 걔네들이요. 못 들으셨어요? 기범 형이…”
태민이 슬쩍 기범의 눈치를 보더니 종현의 귀로 입을 가까이했다.
“요게 궁하다 그래서요.”
새끼 손가락을 흔들며.
“아…….”
의미를 알아챈 종현이 꾹 입을 다물었다. 기범이 여자를 사귀고 다닌다고 짐작은 했지만 남한테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되니 왠지 기분이 탐탁치 않았다.
“저는 됐고 그래서 선배들이나 포식하시라구 4명만 불렀는데.”
“원래, 그…런 거 때문에 여자애들 부르고, 그래?”
“그런 거요?”
종현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러니까아, 하고 말꼬리를 늘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눈치챈 태민이 슬쩍 웃었지만 종현의 반응이 재밌어서 계속 모르는 척하며 물어봤다. 그런 게 뭔데요?
“세, 섹…스, 때문에 그냥, 안 좋아하면서 만나구, 그러냐구….”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데 섹스라는 말도 쉽게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진 종현이 태민은 흥미로웠다.
“뭐, 오른손이 애인인 것보단 낫지 않나요?”
종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모르겠는데, 그런 거…. 종현도 남자이니 가끔씩 영상을 보고 자위를 하는 편이긴 했지만, 친구들처럼 부엉이 파일에 잠금장치를 걸어놓으면서까지 파일을 쌓아놓고 일주일에도 몇 번씩 하지는 않았다. 성에 미련이 없는 타입이기도 했고 일단 사정 후에 뒤처리가 너무도 싫었기 때문이다. 특히 페니스에 묻은 자신의 찐득한 정액을 닦아내고 하는 건, 좀 역겹기도 했다. 야동 보면 여자들이 남자들 걸 입에 물고 다 받아먹던데, 냄새부터 비린 것을 먹는다니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흐음, 형도, 필요해요? 한 명 더 부를까?”
태민이 당장 연락할 기세로 핸드폰을 뒤적이길래 종현이 태민의 손목을 꾹 쥐며 아니라고 극구 말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형은 저랑 놀아요. 선배들은 여상 애들이랑 놀고, 형은 나랑 놀고. 짝도 딱 맞네.”
“어….”
“분명 노래방에서 한두 시간 때우다 다 모텔 갈 테니까.”
“…….”
모텔, 이라는 말에 뜬구름처럼 잡히던 여자와 섹스가, 점점 적나라하고도 현실감 있게 종현에게 다가왔다. 김기범 쟤는, 원래 여자랑 놀 거였으면서 왜 나를 데려왔나. 태민의 말에 괜히 울컥해서 종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종현이 심기가 불편한 건 줄 안 태민이,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종현을 바라보았다.
“저랑 노는 거… 싫어요?”
“아, 아니. 그게 아니구.”
종현이 깜짝 놀라서 태민을 바라보았다. 내가 대체 왜 너랑 놀아야하는데…? 묻고 싶었지만 차마 태민의 애처로운 얼굴 앞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버벅 거리는 종현이 귀여워 태민은 좀 더 몸을 종현에게 밀착시켰다. 순간 종현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 생글생글 웃으며 태민은 종현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 볼 땐, 기범과 닮진 않았어도 좀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네 근데 좀 입은 게 찌질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뭐랄까, 보면 볼 수록…. 눈매가 묘했다. 치켜올라간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진 것 같고. 고양이 같기도 하고 강아지 같기도 하고. 어깨는 다부진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고, 무엇보다 헐렁한 교복에 감싸인 다리가 늘씬하다. 허벅지는 살짝 살집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날씬하고, 양말에 감싸인 발목은 가늘고 복숭아 뼈가 예쁘게 도드라져 있다. 드러나봐야 알겠지만 종아리엔 알도 없고 미끈할 것 같은데…,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태민은 이런 사람이라면 남자라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클럽을 들락날락해서 정조 관념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성별 관념조차 없을 줄이야.
“형 눈매가 참 예쁘네요.”
“…으음, 성격, 나빠 보이지 않아? 예전엔 야려보는 것 같단 소리 많이 들었는데.”
“잘 모르겠는데. 아, 좀 치켜 뜨면 그럴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형은 키가 작으니까 민호 형 같은 사람 볼 땐 어쩔 수 없을 것 같은데.”
“최민호가 큰 거야….”
“그래도 이쁘잖아요.”
근데 남자한테 예쁘다는 게 좋은 건가? 종현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태민이 스르륵 얼굴일 가까이하더니 살짝 눈을 내리깔고 종현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사실 다 예쁜 것 같아요.”
가까워진 얼굴 덕택에 귓가에 간지럽게 숨이 와닿으며 목소리가 울렸다. 얘… 뭐라는 거지?
“입술도… 좀…….”
순간, 다부진 손길이 태민의 어깨를 세게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밀쳐진 태민이 낮게 욕을 옲조리며 고개를 돌렸다. 기범이 굳은 얼굴로 서있었다. 걸그룹 노래를 고음 불가의 성대로 불러대며 즐겁다고 웃어제끼던 나머지 무리까지 태민과 기범을 주목했다. 철없게 철없게 살다가 미쳐~ 노래방 안에 울리는 코러스 때문에 기범이 무어라 낮게 읊조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야, 김기범. 뭐라고?”
최민호가 되묻는 말도 무시하고 기범은 우악스럽게 종현을 끌어당겼다. 기범이 룸을 나가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며 짙은 화장에 미니스커트에 가깝게 줄인 교복을 한 여학생들이 쏟아져들어왔다.
“미안해~ 너무 늦었지!”
간드러진 목소리에 굳어진 기범의 표정은 더 구겨졌다. 종현도 화난 듯한 기범에게 놀라있었다가 얼굴이 새하얀 여자들을 보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향수 냄새….
“니들끼리 놀아라.”
기범은 성의 없이 말하고는 여학생들을 물리치곤 룸을 빠져나갔다. 분위기가 싸하게 식은 룸 안은 마치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영문을 모르는 여학생들은 고개만 갸웃거리며, 자리를 주선한 태민이의 이름을 늘어져라 불렀다. 그러나 정작 태민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져있었다.
“뭐야 이태민, 기범이가 뭐랬냐?”
“……. 씹, 몰라요.”
“씹? 야, 너 개기냐!”
“아, 아까우면 처음부터 보여주질 말던가!”
“뭐어?”
기범이 저렇게 쌩하니 가버린 것도 영문을 알 수 없고 태민이 하는 소리도 영문을 알 수 없다. 민호는 답답하다는 듯이 인상을 잔뜩 쓰고 태민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팍 상한 듯한 민호와 태민을 바라보며, 하원과 도정은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아, 오늘 판 좇됐다.
“김기범, 뭐 하잔 거야! 태민이한테 왜 그래?!”
“태민이? 그새 존나 친해졌네. 헤프긴.”
“……뭐? 김기범, 너 그게 형한테 할 소리야?”
상처받은 얼굴의 종현을 아랑곳 않고 기범은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누나, 빈 방 어딨어.”
“11번 룸….”
“두 시간 넣어. 서비스 졸라 빵빵하게.”
기범은 다시 종현을 잡아 끌며 노래방 깊숙한 데 있는 11번 룸을 찾아들어갔다. 그리고 룸을 들어서자마자 종현을 쇼파에 내동댕이쳤다. 등받이에 머리를 부딪힌 충격 때문에 미처 들을 새가 없었지만, 찰칵하고 룸의 문이 잠겼다.
아 씨…, 뒷통수를 문지르며 종현이 글썽한 눈망울로 기범을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기범은 굳어진 얼굴과 차가운 눈초리로 종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짜 화났을 때만 나오는 얼굴 표정이었다. 그러나 종현은 기범이 왜 화났는지 영문조차 알 수 없었고, 오히려 화내는 것은 자신이어야한다고, 억울한 심정이 치밀었다.
“김기범! 나 이제 안 참아!!”
“안 참아? 나는 이제 못 참겠어.”
“뭘 못 참아? 니가 참은 게 뭐가 있어? 항상 제멋대로잖아!”
“제멋대로……?”
기범이 종현의 무릎을 누르며 종현의 위로 올라탔다. 종현은 입을 꾹 다물고 침을 삼켰다. 얘가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종현은 기범과 자신이 싸우면 피떡이 되는 건 자신이리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형이 되서 쪽팔리지만 종현은 객관적인 사람이고 나름대로 냉정한 판단을 할 줄 알았다. 예전에 한 번 기범이 복도에서 멱살잡고 싸워서 부모님이 학교에 오신 적이 있었는데, 기범이 아니라 상대쪽이 먼저 싸움을 건거라서 정학으로 간단하게 처리가 되었지만… 종현은 학습지 심부름을 하다가 우연찮게 그 싸움을 보고 경악을 했었다. 상대쪽에서 일방적으로 먼저 시비를 붙인 거라는데 정작 일방적으로 때리는 건 기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날랜 줄은 알았는데 싸울 때 장난아니었다. 하여튼… 종현은 긴장했다. 저 뼈가 도드라진 손에 맞으면, 필시 강냉이가 하나 둘로 끝나진 않으리라.
“기, 기범아. 말로… 할래 우리?”
화내야하는 건 난데 왜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해야하지. 자존심이고 뭐고 집어던지고 기껏 그렇게 말했건만.
“싫은데.”
돌아오는 건 기범의 차가운 대답 뿐. 기범이 밖에서는 험하게 굴어도, 저한테까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종현은 배신감에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아 두 눈을 꾹 감았다. 그래, 칠 거면 빨리 쳐라. 이 악물고 주먹도 꼭 쥐고 기다리는데, 무언가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종현의 입술을 덮었다. 닫힌 시야도 그림자가 진 것처럼 어두웠다. 뭐……지, 종현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처음, 에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 눈 앞에 아주 가까이 와있는 건… 기범의 눈매였다. 닫힌 눈매에는 촘촘히 박힌 속눈썹… 뚜렷하게 보이는 속쌍커풀…. 멍해있는 와중에 기범의 혀가 종현의 힘 풀린 입술을 뚫고 들어와 종현의 혀를 간지럽히더니 치열을 고루 훑었다. 입 안의 점막을 핥는데 종현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키스, 잖아…. 근데 이걸 왜 내가 기범이랑……. 이제야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한 종현이 몸을 비틀었지만, 대체 언제한 건지 몰라도 양팔이 넥타이로 결박되어 있었다. 아까까진 분명 자신의 목에 얌전히 매여져있던 자주색 넥타이였다. 우, 우응…. 종현이 기범에 혀에 틀어막힌 채 낮은 신음소리를 뱉었다. 성대의 울림이 혀를 타고 느껴져, 기범은 서서히 자신도 흥분되어가는 걸 느꼈다. 기범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종현의 입술이 타액으로 젖어 유난히 더 붉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숨이 찬 지 종현의 가슴이 눈에 띄게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다.
“기, 김기범… 너, 무슨… 하아… 짓…”
기범이 피식 웃으며 종현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낮은 목소리가 종현의 귓가를 오싹하게 파고든다.
“이제 시작이야.”
- 2010/09/22 02:13
- takitani.egloos.com/89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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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지, 최민호.”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걸까. 기범이 속삭일 때마다 귓가에는 뜨거운 입김이 쏟아지는데, 정작 팔뚝에선 쭈볏쭈볏 오한이 돋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느낄 수, 있었다. 기범은 분명 웃고 있을 것이다. 해사하게 웃으며, 가끔은 카메라를 곁눈질해가며. 저에게 귓속말을 하는 기범의 모습은 남들이 보기엔 퍽 다정한 91년생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팬사이트에선 오랜만에 밍키 터졌다고 팬들이 꺅꺅 댈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간 지독한 어지럼증이 민호를 덮친다.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서, 그래서 당장 제 옆에 있는 기범을 내팽겨 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이렇게 팬들의 눈이 많은 공개된 석상에선 들이민 얼굴조차 밀어버릴 수 없다. 후, 곁에 있는 기범에게도 티가 타지 않게끔 작게 한숨을 몰아쉰다.
“뭐가.”
웃음기를 살짝 머금은 얼굴로, 그러나 최대한 싸늘하고 낮은 목소리로 민호가 되묻자 기범이 두 눈을 마주하며 쿡쿡 소리내어 웃는다. 너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를 향한 비웃음이 소리가 되어 비져나오는 것 뿐일까. 어쨌든 너는 무척 즐거워 보인다. 우리 사이를 오가는 가시 돋힌 말들이 무슨 물렁한 농담이나 되는 것처럼. 웃음을 멎은 기범이, 하지만 여전히 휘어진 눈을 한 채 민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뗀다.
“나는 내 거 맘대로 건드리는 거 절대 못 참잖아.”
“…….”
“쓴다면 쓴다고, 말을 해야하지 않겠어?”
기범이 천천히 민호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밀착해있던 기범이 여태까지 꾹 쥐고 있었던 저의 팔뚝이 타는 것 같이 뜨겁다고, 민호는 생각했다. 제길, 이미 뒷덜미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설마 지금 쫀 거야, 최민호? 이런 씨발. 터져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속으로 삼킨다. 정말 엿같은 상황이다.
“물론.”
“…….”
사실 체력적인 면에 있어서 민호는 기범을 훨씬 앞섰다.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해내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일원이니만큼 기범 또한 체력이 보통 이상은 되었지만, 원래 축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포츠를 즐기는 민호가 날마다 쇼핑을 하고 잡지 스크랩을 하는 기범보다 체력이 뛰어난 건 당연했다. 그런데 항상 민호는 기범에게 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키도, 얼굴도, 뭐 하나 저 새끼한테 꿀리는 게 없는데 대체 왜. 그건 결국 정신적인 문제였다. 갓 스무 살이 된 또래 남자애들에 비해 기범은 뭔가 특별했다. 어른스럽다고 해야하나. 또래에 비해 점잖다거나하는 단순히 행실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매서운 눈. 특유의 통찰력. 상대를 발가벗기는 것 같은, 그 시선.
“그건 네가 빌려달라고 해서.”
“……”
그 특유의 통찰력 때문인가? 너가 그를 손에 넣은 건.
민호는 멍하니 멀리서 들려오는 기범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다. 힐끗, 속삭이는 기범의 시선이 민호의 어깨 너머 어딘가를 향한다.
“빌려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건 아주 스페셜한 거거든. 이미 제 자리로 돌아간 기범이 혼잣말처럼, 들릴락 말락한 아주 작은 소리로 읊조렸고 민호는 그 읊조림을 놓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새끼야. 민호는 이를 질끈 물고 깊게 두 눈을 감았다 뜬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기범의 시선을 쫓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선이 닿은 곳엔 종현이 있었다. 한 줄기 빛처럼, 그가 거기에 있었다.
스페셜한 김종현. 김기범의, 김기범만의, 김종현.
숙소를 이사한 뒤에 종현과 민호 이 두 사람과, 나머지 세 사람으로 멤버가 갈리어 방을 쓰게 되긴 했지만. 종현은 태민과 방을 바꾸어 자는 경우가 잦았다. 하루는 태민이 이럴 거면 그냥 자기랑 아예 방을 바꾸자는 소리를 했지만, 종현은 치열한 가위바위보 경쟁 끝에 얻은 지금의 방을 순순히 넘기긴 또 싫은 모양이었다.
뭐, 종현이 귀찮음을 무릎쓰며 잠자리를 바꾸자는 이유쯤이야 태민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으니 별 말 않은 채 민호의 방으로 총총 넘어갔지만. 오늘은 진기 형도 뮤지컬 연습과 야행성 MC를 보느라 아침이 되도록 숙소엔 들어오지도 않을테니 아주 한탕 뛰겠구만. 이럴 땐 숙소가 방음이 잘 되어있는 게 참 다행이지 싶다.
“어휴, 저 두 사람이 한 방 안 쓴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어요.”
태민이 종현의 침대에 엎어지며 민호를 향해 중얼거린다. 한 방 쓰면 더 심하게 애정행각을 벌일 것도 같으니까 그건 그거대로 아닌데, 지금처럼 종현 형이랑 방을 바꾸는 것도 좀……. 아씨, 내일 침대 시트를 바꿔야 하나. 설마 매너없게 제 침대에서 그러진 않겠죠?
“…….”
“민호 형, 눈 뜨고 자요?”
분명 두 눈은 천장을 향해 멀뚱멀뚱 떠있는 것 같은데 아무런 답도 없는 민호를 향해 태민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내가 김종현이냐.”
참 확 깨게 만드는, 동굴을 기는 듯한 낮은 목소리. 태민이 푸흐흐, 낮게 웃으며 하긴 그래, 하고 맞장구 친다. 버릇이라고 해야할까 종현은 많이 피곤한 날엔 눈을 뜨고 자곤 했다. 그럴 때면 기범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손바닥으로 눈을 감겨주곤 했고.
“뜨고 자는 건 종현이 형이면 족해. 첨에 벤에서 그러구 자는 거 보고 얼마나 까무러쳤는데…….”
“…….”
태민이 높은 톤의 목소리로 자꾸 뭐라뭐라 떠들어대는데, 민호의 귀엔 도통 들어오지 않는다. 신경쓰이는 건 오직 벽 너머. 두 사람이 있을 방. 김종현 있는 그 공간. 종현의 얼굴 윤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갈증이 날 것만 같다. 물이나 마실까, 타는 듯한 목에 민호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어젠 무슨 사고 친 거에요, 형?”
여전히 태평한 목소리가, 그렇지만 뼈 있는 태민의 한마디가 민호의 뒷통수를 가격했다. 그게 고의였든 우연히든. 최민호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거엔 변함이 없었다.
“기범이 형 건들이지 마요. 성격 잘 알잖아요.”
민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조금 굳은 얼굴로 태민을 바라보았다. 요 꼬맹이는 헤헤 웃으면서 맨날 물건 뭐 하나씩 잃어버리는 거 보면 나사 하나 쯤은 빼놓고 사는 거 같은데, 어쩔 때보면 쥐도 새도 모르는 걸 저만 알고 있을 정도로 눈치가 귀신이다. 너는 대체 어디까지를 알고 어디까지를 모르는 거니, 묻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기범과 종현의 관계를 눈치챈 것도 아마 저보다 태민이 먼저였을 것이다. 민호가 조심스럽게 화두를 꺼냈을 때 ‘그걸 이제야 알았어요? 이제 진기 형만 알면 되네.’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던 그였으니까.
“형도 보통내기 아닌 건 아는데…. 원래 엄마들이 진짜 화나면 그게 더 무섭잖아? 고로, 난 기범이 형이 화나는 게 더 무섭거든요.”
“넌…… 그렇게 쉽게 포기가 돼?”
태민이 종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건, 민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아마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진기 형과 태민의 마음을 훔쳐갔던 장본인인인 종현 정도일까.
민호가 거의 노려보다시피 태민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으르렁대는 것 같은, 짐승의 목소리. 순하고 큼지막한 눈망울 때문에 붙은 한우란 별명하곤 정말 안 어울린다. 짐승돌 타이틀은 2pm 아니라 우리들한테나 붙여줬어야 하는 건데. 나한테 날을 세워서 대체 어쩌자고, 태민이 옅게 웃으며 몸을 일으켜 민호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눈치가 9단이면… 기범이 형은 100단 정도? 근데 형은 나한테도 못 미치잖아.”
9단, 운운할 때는 1cm 정도 떨어져있던 태민의 집게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이 100단, 이라고 말할 때는 쫙 펴져서 거의 ㄱ자를 그렸다.
“기범이 형은 처음부터 나한테 선 좌악 그었어요, 넘보지 말라고. 내가 둘 사이 눈치챈 건 또 어떻게 귀신 같이 알았는지. 뭐, 그니까 눈치 100단인 거겠지만.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알아요? 여우여우 그러는데, 까보니까 호랑이잖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는 듯 태민이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평소엔 아들, 아들 거리면서 징그러울 정도로 정말 키어멈 같더니만, 넘보지 말라고 경고하던 그 때엔 천상 제 구역을 넘보는 또 다른 수캐를 몰아내는 하나의 맹수 같았다. 오싹하게스리. 뭐냐고, 그 믿을 수 없는 갭은.
“나는 약삭빠른 열여덟이라서요. 돈 많이 벌어서 오래오래 살고 싶거던요. 아, 근데 민호 형 하는 꼴은 그냥 지켜보대?”
자신의 이름이 태민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민호는 인상을 썼다. 거기까지만 하라는 신호인데도, 태민은 다 알면서도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약삭빠른 열여덟의 다른 말은 얄미운 열여덟일 것이다. 태민이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아니, 지금 누구가 됐든 간에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듣고 싶지 않다면 귀를 막거나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지금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왠지 저가 졌다고 순순히 승복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나는 패배자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아는 거죠. 나는 일단 딱 선을 그어두지 않으면 언제 불도저처럼 밀고 나갈지 모르니까 미리 손을 쓴 건데, 민호 형은 그게 아닌 걸 아니까. 팔짱만 끼고 어디 어떻게 하나 구경하는 거지.”
“…….”
“기범이 형도 가만보면 악질이야, 그렇죠?”
“난 너처럼 쉽게 포기가 안 돼.”
나이 스물이면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사랑과 가슴을 뜨겁게 지피는 사랑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나이이다. 태민은 민호의 다부진 목소리를 듣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낮게 소리내어 웃는다.
“알아요, 그게 되면 포모남 최민호겠어요?”
같은 멤버로 지낸지도 횟수로만 3년이 다 되가고 연습생부터 알고 지냈던 시절까지 생각하면 아득하다. 포기를 모르고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라는 걸 그냥 알음알음 지내는 주위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리고 그들이 아는 사실보다 최민호는 훨씬 더 진득한 남자라는 걸, 5년이 멀다하고 동고동락한 태민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해요.”
태민의 목소리는 꽤나 단호했다. 그리고 허를 찌르는 덧붙임.
“외사랑은 힘들잖아요.”
그건 모든 가능성을 묵살하는 한마디였다. 종현이 민호에게 흔들릴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종현이 민호에게 올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종현이, 종현이 기범을 떠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모든 가능성을 백지로 돌려버리는. 최민호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 그리고 누군가에겐 최상의 시나리오일…….
“넌 왜 그렇게 확신해?”
분에 받힌 민호는 제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곤 태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열하고 싶다, 그런 미호에 반해 태민은 지극히 담담했다. 아니, 담백했다.
“상대가 김기범이라서요.”
“…….”
“후아암, 나 잘래요. 벌써 12시네, 졸리다.”
그렇게 말하며 태민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더니, 더 이상 어떤 얘기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얘기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벽을 향해 돌아눕는다. 민호는 한동안 굳은 듯이 앉아서 그런 태민의 마른 등만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방문 쪽으로 다가가 불을 껐다. 불이 꺼짐과 동시에 민호의 마음에도 정전이 일어난 것 같았다. 태민과 대화하며 꽉 쥐었던 주먹에선 순식간에 스르륵 힘이 빠져나가 버리고, 제 안의 모든 감정이 새하얀 재로 변해버린 것 같은 감각이 일었다.
상대가 김기범이라서요.
어둠 속에서 태민의 목소리가 귓가를 웅웅대었다. 두 눈을 감는 민호의 광대와 뺨으로 아직은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더 싫은 건, 더 끔찍한 건, 태민의 그 말에 아무런 반박조차 할 수 없던 자신이었다.
“하, 하아, 기, 기범아…! 좀, 천천히, 아흣…!”
젤로 적셔진 기범의 끈적한 손가락이 종현의 엉덩이를 지분거렸다. 익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몸을 많이 섞진 않은 터여서, 고작 손 가락 두 개도 종현에겐 커다란 막대기가 제 뒤를 멋대로 쑤시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엔 좀 더 정성스럽게 혀로 애무한 다음에 손가락으로 풀어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별 다른 애무 없이 손가락부터 무작정 뒤에 쑤셔넣었기 때문에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기범이 쉿, 조용히 해, 중저음의 목소리로 종현의 귓가에 속삭인 뒤 놀고 있던 다른 손의 손가락을 종현의 입술 안에 집어넣었다. 종현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기범의 길고 가는 손가락을 혀로 정성스레 핥았다. 마치 펠라를 하듯 혀 끝으로 손가락을 쓸어핥다가 쪽쪽 입 안의 근육을 이용해서 빨기도 했다.
“아, 씨발 김종현, 존나…….”
기범이 낮게 욕을 지껄이며 종현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종현의 유두를 지분거렸다. 뒷구멍이 농락당하는 데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않다가도 기범의 손만 타면 빳빳해지는 유두가 손가락 사이에서 적절히 놀아나자 종현은 죽을 맛이었다. 이미 애액이 선단에서 줄줄 흐르는 페니스는 꼿꼿이 서서 자극을 바라고 있는데, 기범은 절대 자신의 페니스를 만져주지 않았다. 종현은 시트를 꽉 쥐고 있는 제 손으로 자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기범이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꾹 참고 있는 중이었다. 허리를 낮추어 기범 몰래 페니스를 시트에 살살 문지르는 것도 한계였다.
“기범아, 흐윽, 기범아, 응, 제발…….”
종현이 고개를 돌려 애원하듯이 말하자 기범의 손가락이 종현의 안에서 쑥 빠져나갔다. 순간 차가운 공기가 엉덩이 골 사이의 주름을 파고들어 쭈볏 털이 설 정도로 오한이 느껴졌다.
“쫑.”
기범이 종현을 돌려눕히고는 입을 열었다. 장난스러운 별명으로 자신을 부른 것치곤, 싸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기범은 워낙 눈매가 날카로워서 표정을 굳이면 순간 말을 잃을 정도로 무서웠다.
“내가 지금부터 벌을 줄 건데.”
“……기, 기범아.”
“왜 받는진 알아야겠지.”
자신의 위로 올라탄 기범이 무릎으로 앞섬을 자극하자 종현은 아, 하고 낮게 신음을 흘렸다가도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범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눈을 떴다. 몸은 여전히 뜨겁고 그 열기는 뇌까지 전해져서 자꾸 사고회로는 둔하게만 돌아가는데, 아직 놓치지 않은 이성의 끈은 기범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최민호.”
기범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종현의 시선이 옅게 흔들렸다.
“키스했지.”
“……. 기범아 그건.”
“알아, 도둑 키스였다는 거. 형은 자고 있었지. 아니, 자는 척. 그 상황에서 일어날 순 없었을 테니까. 그래.”
기범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근데 화가 나.”
“…….”
“알아, 내가 못난 새끼라 이런 거. 그런데 어떻게? 화가 나는 걸.”
기범이 말할 때마다 입김이 얕게 열린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걸 종현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벌 줘야겠어.”
종현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기범이 우악스럽게 종현의 다리를 벌렸고, 발목을 잡아 당겨 자신의 어깨에 내려놓는가 싶더니 말미의 여유도 주지 않고 기범은 꼿꼿이 선 자신의 그것을 종현의 엉덩이 사이로 집어넣었다. 아까 손가락으로 충분히 풀어놓은 덕 뿐인지 조금 빳빳하긴 했지만 그래도 중간이 넘게 삽입되었고, 기범은 크게 허리짓을 하며 뿌리 끝까지 종현의 안에 집어넣었다. 자신의 것을 삼킨 종현의 구멍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이 보였지만 기범은 개의치 않았다. 이건 벌이니까.
“하, 하윽…!”
배려심 따위 느껴지지 않는 기범의 빠른 피스톤질에 종현은 죽을 맛이었다. 간간히 쾌락이 찾아오긴 했지만 덮여오는 고통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양이었다.
“흐, 흐응, 아, 아파, 앗, 버, 범아…!”
“후, 흡…!”
기범이 세게 쳐올라온 순간, 종현은 머릿속에 새하얗게 불이 들어오는 것 같았고 하아앗! 하는 간드러지는 신음소리와 함께 허리를 띄었다.
“아, 하앙, 거, 거기!”
포인트를 찾아 그 방향으로만 몇 번 찌르던 기범이, 불현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종현이 의아해서 눈물 젖은 눈으로 기범을 바라보려는 찰나, 기범이 종현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의 위에 앉게끔했다. 꼿꼿이 바로 선 허리와 자세 때문에 기범의 것이 제 안으로 더 깊게 박힌 것 같은 충격에 종현은 허윽, 하고 낮게 신음을 뱉었다.
“너무 좋아해서, 벌이 아닌 것 같아.”
“기범아….”
“그러니까 스스로 움직여 봐.”
종현은 부들부들 떨리는 허리로 자세를 지탱하기 힘든지 기범의 어깨를 꾸욱 붙들었다. 치욕으로 발갛게 물든 종현의 눈가에선 금방이라도 망울망울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종현은 키스도 섹스도 먼저 기범에게 하자고 한 적이 없었고,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움직인 적도 없었다. 서로의 몸을 탐하고 탐하는 것 자체가 종현에겐 너무나 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종현이 울지 않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었지만 그것도 기범으로 인해 저지되었다.
“그럼 입술 망가져.”
귓가에 울리는 기범의 목소리는 한없이 달콤하기만 한데, 그는 싸늘한 눈으로 종현을 바라보며 결코 먼저 종현을 만족시켜줄 생각은 없는듯 하다. 종현은 마음을 굳게 먹은 듯, 기범의 목덜미를 세게 끌어안고 기범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천천히 허릿짓을 시작했다. 자신이 움직이면 좀 더 쉽게 포인트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오히려 더 힘들었다.
“하, 하앗…….”
젤과 애액이 좁은 구멍 안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페니스 위로 기범의 단단한 복부가 닿아서 더 죽을 맛이었다. 얘는 운동이라곤 달리기 정도밖에 안 하면서 왜 이렇게 잔근육으로 몸이 탄탄하지. 그리고 종현이 쓸데 없는 생각을 하는 줄은 어덯게 알았는지 기범의 낮은 목소리가 끈적하게 귓가에 감긴다.
“딴 생각하지 마.”
“흐…, 기범아아, 흐으.”
도저히 안 되겠다. 자신의 허릿짓만으로 절정에 이르는 데는 하루가 더 걸려도 무리일 것 같았다. 게다가 기범이 온전히 자신의 아래 누워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부둥켜 안은 상황에서 허리를 움직이려니 더 힘들었다.
“너가, 너가… 해줘어….”
“뭘.”
퉁명스러운 목소리.
“흐으…”
종현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속삭인다.
“너가 박아줘어….”
“박고? 박기만 하면 돼?”
종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럼 어떻게 해줄까아, 하며 종현의 머리 위로 떨어졌지만 그가 요구하는 대답은 참 짖굳기만 하다.
“야하게 말하지 않으면, 원하는 거 해주지 않을 거야.”
“흐으…….”
종현은 자신이 보곤 했던 야동들에서 뭔 말을 했더라,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제기랄, 친구 놈들이 구워온 야동은 일본 야동이 주였기 때문에 기억나는 말이라곤, 야메떼, 요로시꾸, 뭐 이런 거 뿐인데……. 필사적으로 말을 고른 종현이 빨개진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바, 박아서, 휘저어줘…. 나… 흑, 너한테 박히고…, 흐으, 싶어어….”
거의 울 것 같이 잦아드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던지, 기범은 종현을 눕히고 세게 박아넣었다.
“하아앙!”
둑 터진 물처럼 밀려오는 기범의 허릿짓에 종현의 입에서도 신음소리가 멈출 줄을 몰랐다. 종현의 몸은 거의 반으로 접혀서 기범의 허릿짓을 받아내고 있었다. 기범의 시야에도 그렇듯 종현의 시야에도, 자신의 아래에 기범의 것이 박힌 게 똑똑히 보였다. 살이 마찰하는 소리와 질척한 액체가 찌걱이는 소리가 뒤섞여 기범의 단단한 기둥이 자신의 아래를 뚫는 모습은 수치스러우면서도 흥분을 일으켰다. 젤이 애액과 마찰했기 때문인지 작은 거품까지 일고 있었다. 자신의 구멍에 기범의 것이 박히는 걸 눈으로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렇게 굵은 게 제 작은 구멍을 넓히고 박기까지 하고 있다는 게 두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잘, 하아, 봐….”
종현의 시선이 반쯤 빠져나갔다가 다시 박히는 두 사람의 아랫도리에 가있다는 걸 눈치챈 기범이 비릿하게 웃으며 뜨겁게 속삭였다.
“하, 하읏, …하앙!”
“김종현 니 구멍, 하아, 내 꺼 존나 집어 삼켜… 어?”
“흐, 흐읏, 시, 싫어… 싫어…”
“두 눈 똑바로 뜨고, 흐으, 보라니까…”
내가 말하기 전까진 잘만 보고 있었던 주제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느 종현의 턱을 세게 붙잡고 으르렁대듯 눈 감으면 죽을 줄 알아, 하고 낮게 속삭이자 그제야 종현이 눈물이 가득찬 시선으로 쾌감에 젖은 기범의 얼굴과 그리고 여전히 야하게 기범의 것이 삽입되는 제 아래를 쳐다보았다.
“하윽, 씨발, 하아, …좋아?”
종현은 타액에 잔뜩 젖은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조차 하지 못하며 정신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를 쓸어내리자 박히면서도 움찔이며 일일히 반응한다. 몸 어디 하나 민감하지 않은 데가 없고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 기범은 빳빳이 솟은 종현의 페니스 끝을 꾸욱 누르며 그의 것을 손으로 감싸쥐고 손으로 피스톤질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범의 것을 감싼 내벽이 더욱 수축한다.
“하, 아읏, 아, 안돼애… 하앙.”
“하아, 뭐가.”
“하아, 거긴, 아아, 앙.”
종현은 더 느낄 것도 없다고 생각한 몸이 여실히 기범이 선사하는 성적 쾌감에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미 제 몸은 뇌의 통제를 벗어난지 오래였다.
“하앙, 싸, 쌀 것 같아 하앙!”
기범은 종현의 뜨거운 내벽을 느끼면서 치밀어오르는 사정감을 누르는 중이었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파정에 이를 것 같은 종현의 페니스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틀어막았다. 사정이 가로막히자 괴로운 듯 종현이 허리를 비틀었다.
“하악, 기, 기범, 아, 흐으….”
종현은 그릇을 넘어버린 쾌감의 양을 감당할 수 없는지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입술을 타고 맑은 침이 뚝뚝 흘러내렸고 잔뜩 풀린 눈에서도 굵은 눈물 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흘끗 바라본 종현의 얼굴은 보는 것만으로도 야해서 기범은 피스톤질에 피치를 올렸다. 제대로 찔렀는지 종현의 허리가 잔뜩 휘며 높은 신음성이 터져나왔고, 순간 기범은 종현의 안에 깊숙히 파정했고 기범의 손가락이 치워진 종현의 페니스 또한 꿀렁꿀렁 끈적한 정액을 내뱉어냈다.
“하아, 하아…”
기범이 종현의 위로 엎어졌다. 뜨거운 분출과 함께 부드럽게 돌아온 기범의 페니스가 몸만 살짝 움직이자 느릿하게 종현의 애널에서 빠져나왔고, 그와 함께 젤과 투명한 액이 뒤섞여 흘렀다. 종현은 자신의 구멍에서 적나라하게 흐르는 점액들의 감촉에 구멍을 몇 번 움찔거리며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오르가즘을 느꼈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격한 섹스에 지친 건 종현 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콘돔 없이 젤만으로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종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기범은 어디선가 들은, 안에 싸면 바텀이 엄청 배탈과 설사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미적미적 몸을 일으켰다. 벌이었다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이니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줘야지 싶었다. 아파하는 김종현의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솔직히 격한 섹스에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니 약간은 허탈하고… 또 이불 안에 들어가 하이킥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종현의 잔뜩 빨갛게 부어오른 애널은 안쓰러웠고, 말로는 벌을 준다고 했지만 모든 것은 제 자신의 어린 치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저 자신은 민호를 그렇게 다그칠 권리조차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제 3 자가 어떻게 손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기범아.”
몸을 일으키려는 기범을 종현이 다시 붙잡는다.
“……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술에서는 퉁명스러운 대답만이 튀어나간다. 화를 내도 좋아, 기범은 그렇게 생각했다.
“너 하나도 안 못났어.”
“……뭐?”
“누가 그러디? 널더러 못난 새끼라고.”
뜬금 없이 뭔 소릴 하나 했더니 섹스 전에 기범이 한 소리를 가지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종현은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나 너 꺼 맞아.”
“…….”
“그니까 안 불안해해도 돼.”
“……응.”
“담부턴 내 입술 철통같이 사수 함. 그니까 화내지 마라.”
“……응.”
종현이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잘못한 아이처럼 응응, 대답만 하는 기범을 향해 쭉 팔을 뻗는다.
“기범아아, 나 허리에 힘이 하나두 안 들어가.”
기범이 고개를 퍼뜩 들더니 서둘러 종현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아 몸을 일으켜 주었다. 자신의 허리를 감싸주고 있는 기범을 바라본 종현이 어느새 기범의 촉촉해진 눈망울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맘은 약해가지고, 결국 자신이 한 짓 때문에 자신이 상처받는다니까. 종현은 양손으로 기범의 얼굴을 소중한 듯이 감싸쥐었다. 자그마한 손에 보드랗고 따뜻한 피부가 느껴졌다. 종현은 기범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특별한 기범이.”
“…….”
“내 기범이.”
“…김종현.”
“응.”
“내 사랑.”
그래서 더 특별한 사람. 더 소중한 사람. 내 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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